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1개조 요구 (문단 편집) === [[파리 강화 회의]] === [[파리 강화 회의]] 당시 중국은 연합국으로 참전한 승전국 입장에서 중국 내에 설치된 열강의 조차지를 포기 및 반환하며, 관세자주권을 승인하고 일본이 전쟁 중 빼앗은 영토와 권익을 반환해야 한다는 것 등 열강의 중국에 대한 권리의 포기와 21개조의 무효를 주장하였다. 하지만 전쟁이 일어난지 불과 한 달여만에 참전해 독일을 산둥 반도에서 축출하는 전공이라도 있던 일본에 비해 전쟁이 다 끝날 무렵에 비전투병만을 파견해 전과가 미미했던 중국의 발언권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. 또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일본을 밀어주기로 비밀 협약을 맺은 상태였다. 전쟁의 지분과 영프의 암묵적 지지를 앞세운 일본의 요구는 대부분 수용되었고 중국의 요구는 거부되었다.[* 조르주 클레망소는 중국 측이 일본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"당신들도 [[테오발트 폰 베트만홀베크|베트만홀베크]]가 되고 싶느냐?"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.] [[파일:크기변환_2015072802193_1_4 (1).jpg]] [[파리 강화 회의]]에 참석한 주요 전승국 정상. 왼쪽부터 [[데이비드 로이드 조지]] 영국 총리,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올란도 이탈리아 총리, [[조르주 클레망소]] 프랑스 총리, [[우드로 윌슨]] 미국 대통령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